신용회복경험담
한 번의 유혹이 망가뜨린 삶, 회생으로 다시 밭을 일굽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11 11:43
-
16
0
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약 15%)
저는 올해 50세, 충북의 작은 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평범한 농촌 주부입니다. 논과 밭을 돌보며 고추, 들깨, 감자를 심고, 철마다 장에 내다 팔며 소박하지만 분주한 일상을 살아왔습니다. 두 자녀는 도시에서 각자 자리 잡고 살아가고 있어, 우리 부부 둘만의 삶에 익숙해질 즈음이었죠. 봄이면 모종 키우고, 여름이면 잡초 뽑느라 손에 흙이 마르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평화로웠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약 25%)
문제는 무료한 틈에 파고들었습니다. 어느 날 스마트폰으로 우연히 스포츠 베팅 앱을 알게 되었고, 처음엔 단순한 재미로 시작했습니다. 몇 번 소액이 맞아 떨어지자 ‘이 정도면 운이 있는 건가’ 싶었죠. 점점 배팅 금액이 커졌고, 이기면 도전하고, 지면 만회하려고 또 돈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조금만 더 큰 판에 가보자”며 카지노 앱까지 손을 댔고, 그 무렵부터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1~2백만 원이던 대출이 몇 개월 사이 2천만 원을 넘겼고, 수확한 작물로 감당이 안 되자 결국 대부업체 문을 두드리게 됐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2년 8개월 동안 대부업체 3곳과 저축은행 1곳에서 빌린 빚이 6,500만 원. 매달 이자에 허덕이며, 농사일조차 손에 안 잡히던 시기가 길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차마 말도 못 한 채 혼자 끙끙 앓았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약 20%)
결정적인 사건은 휴대폰을 보다 남편에게 메시지 알림이 들킨 날이었습니다. 도박 사이트 입출금 내역이 적나라하게 찍힌 화면을 보고 남편은 말을 잃었습니다. 그날 밤, 남편은 말없이 나가 버렸고 저는 부엌 바닥에 앉아 몇 시간이나 울었습니다.
그때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내 욕심과 무지가 우리 가정을 망칠 수도 있겠다는 자각이 들었죠. 그 후로 한 달 넘게 매일 죄책감에 시달리며, 빚을 어찌 갚을지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우연히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고, 조심스럽게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상담소에 들어서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상담사는 제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며 “지금부터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에 겨우 숨을 돌렸고, 이후 모든 걸 사실대로 털어놓고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약 25%)
서류 준비부터 법원 인가까지 약 넉 달이 걸렸습니다. 농업 종사자라서 정기적인 소득 증명이 쉽지 않았고, 도박 관련 채무라는 점 때문에 심리적으로 더 위축됐습니다. 하지만 성실히 소명하고, 회복 의지를 꾸준히 보여준 덕분에 법원도 긍정적으로 판단해줬습니다.
결국 월 30만 원씩 3년간 갚는 변제계획이 인가되었습니다. 이 금액은 지금의 수입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채권자들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숨통이 트였습니다.
법원에 출석했을 때 판사님은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되돌리려는 의지는 누구나 가진 게 아니다”라고 말씀해주셨고, 그 말이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연체 없이 성실히 상환 중입니다. 중간에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스마트폰에서 도박 관련 앱을 완전히 삭제하고, 상담센터에서 받은 중독 방지 자료를 따라가며 다시 중심을 잡았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약 15%)
개인회생을 시작한 지 이제 1년 10개월 차입니다. 어느덧 절반 이상을 갚았고, 이제는 스스로를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남편과도 다시 대화를 시작했고, 가끔은 서울에 있는 자식들이 손주를 데려와 주말을 함께 보내기도 합니다.
이제 도박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지지만, 그만큼 그 시간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합니다. 더 이상 손바닥만 한 화면에 인생을 맡기지 않겠다고 다짐했거든요.
혹시 이 글을 보는 분 중에 저처럼 실수한 분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다시 시작하려는 결심만 있다면 늦지 않았습니다. 개인회생은 부끄러운 제도가 아니라, 삶을 다시 가꿀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