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은퇴 후의 조용한 삶을 꿈꿨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6.2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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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입부: 은퇴 후의 조용한 삶을 꿈꿨습니다
62세, 평생 직장 하나에서 성실히 일하고 몇 년 전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퇴직 후에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다시 일하게 되었고, 지금은 하루 12시간 근무하며 월 18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습니다. 성인 자녀 셋은 모두 독립했고, 아내와 둘이 시골 근교 빌라에 조용히 살고 있었죠.
젊은 시절엔 차가 사치라 생각했지만, 은퇴하고 나니 오히려 ‘이제 좀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침 TV에서도 “노년에도 여유롭게 운전하는 삶” 같은 광고가 많았고요. 그래서 무리해서 고급 SUV 차량을 리스로 계약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게 제 실수의 시작이었습니다.
■ 전개: 리스 차량 한 대가 만들어낸 5천만 원의 덫
처음엔 월 리스료가 65만 원 정도라 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험료, 유류비, 유지비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100만 원이 훌쩍 넘었고, 제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에 쏟아붓게 되더군요. 거기다 갑작스런 차량 수리비에 카드 할부를 쓰기 시작하면서 점점 빚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리스료가 연체되기 시작했고, 리스회사는 차량 반납과 위약금을 요구했습니다. 카드사 두 곳에서도 연체가 이어지자, 하루에도 수차례 독촉 전화가 걸려왔고, 채무는 순식간에 5,500만 원까지 늘어났습니다.
가족들에게 말도 못 했습니다. 자식들한테는 창피했고, 아내에게는 미안해서 말할 용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혼자 끙끙 앓으며 버텼습니다. 하지만 그건 해결이 아니라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길이었습니다.
■ 위기: 통장을 압류당한 날, 무너졌습니다
어느 날 아침, 월급이 들어와야 할 통장이 출금정지 상태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카드사에서 가압류를 걸어놓은 것이었죠. 그날 저는 한참을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이 나이에 이런 꼴을 당하다니,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했습니다.
며칠 후 아내에게 결국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예상과 달리 아내는 울지도, 화내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얘기해줘서 고맙다”며, 함께 해결하자고 말해줬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처음으로 상담을 받아보자는 용기가 났습니다.
■ 해결: 개인회생이라는 두 번째 기회
지역 법원 인근 상담소에 연락을 하고, 서류를 준비해 개인회생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 총 4개월 정도 걸렸고, 인가를 받을 당시에는 제가 받는 수입과 지출을 고려해 월 25만 원씩 3년간 갚는 계획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총 변제 금액은 약 900만 원 정도였고, 나머지 채무는 면책 대상이 되었습니다.
법원 출석 당시 너무 떨려 손이 덜덜 떨렸는데, 판사님께서 “노후에도 이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실히 변제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해주셨을 때, 말로 다 못 할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초반에는 매달 돈을 맞추는 것도 힘들었지만, 커피 한 잔, 택시 한 번 아끼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내가 이 빚을 어떻게든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 결말: 늦은 나이지만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현재 개인회생 진행 2년 차입니다. 월급은 여전히 넉넉하지 않지만, 매달 성실히 25만 원씩 납부하고 있고, 연체도 없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절약에 익숙한 분이라 함께 검소하게 생활하고 있고, 무엇보다 가족들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젠 더 이상 무리한 소비나 허세는 없습니다. 작은 중고차 한 대, 수수한 옷, 평범한 밥상이 오히려 더 감사한 날들입니다. 인생은 실패보다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나마 깨달았습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나이 들어서까지 빚에 시달리며 “내가 이 나이에 무슨 개인회생이야”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개인회생은 부끄러운 제도가 아니라,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용기 내보세요. 저는 그 덕분에 오늘도 다시 하루를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