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4.30 15:08

가장의 책임감이, 결국 나를 무너뜨렸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4.30 15:08
  • 8
    0

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약 270자)

저는 시청에서 근무한 지 20년이 넘은 공무원입니다. 두 자녀가 고등학생으로 자라면서,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공무원 월급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고요. 그래서 퇴근 후, 틈틈이 창업 관련 정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프랜차이즈 매장 운영이었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약 470자)

처음에는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말을 믿고 간편식 도시락 프랜차이즈를 개업했습니다. 투자금은 약 7천만 원, 은행 대출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유동인구도 적고 브랜드 인지도도 약했습니다. 월세, 인건비, 재료비가 매달 손해로 이어졌고, 가게는 1년 반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이후 손해를 만회하려고 두 번째 매장까지 시도했지만 결과는 더 참담했습니다. 대출은 늘어만 갔고, 3년 만에 채무는 1억 1천만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처음에는 “공무원이니까 신용은 괜찮겠지”라고 안심했지만, 카드 연체가 시작되면서 현실이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밤마다 통장 잔액을 들여다보며 한숨만 쉬었고, 가정의 분위기도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약 370자)

결정적으로 저를 무너뜨린 건, 장남의 대학 입학금 납부일이 다가왔을 때였습니다. 어떻게든 마련해보려 했지만, 이미 카드도 막히고 대출도 거절당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아이의 미래에 제 실수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자책감에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습니다.
3개월 동안 스스로 해결해보겠다고 발버둥쳤지만,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동료 한 명이 조심스럽게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도 있다”고 알려줬고, 처음엔 수치심이 앞섰지만 결국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심정은 마치 경찰서에 자수하러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부끄러움, 두려움, 그리고 약간의 기대감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약 470자)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약 4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생각보다 절차는 체계적이었고, 소득과 지출을 꼼꼼히 검토한 뒤,
월 43만 원씩 36개월 동안 총 1,548만 원을 갚는 변제계획안이 인가되었습니다. 나머지 채무는 변제 완료 후 면책됩니다.

법원 출석 당시, 판사님이 제게 “지속적인 수입이 있는 점을 높게 본다”고 하셨을 때 안도의 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주변 시선을 감당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나니 아내는 “당신 잘못 아니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자”며 응원해줬습니다.
그 한마디에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은 매달 정해진 변제금을 성실히 납부하며, 신용회복과 일상 회복의 첫걸음을 딛고 있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약 270자)

현재 10개월 차 변제를 성실히 이행 중입니다. 다시는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재정 관리를 위해 가계부도 꼼꼼히 쓰고 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도 더 단단해졌습니다. 작은 외식 하나도 감사히 여기게 되었고, 자녀들과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습니다.

혹시 저처럼 책임감 하나로 무거운 빚을 짊어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제도입니다.
저도 아직 가는 길이 멀지만, 희망은 분명히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 공유링크 복사

15f171693b098d2c301350e32fe20e81_1744609432_3123.png